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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3. 퍼스널 쇼퍼 - 해설

이번 글에서는 이 영화가 의미하는 바에 대한 제 생각을 적어보겠습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호하고 불분명한 전개를 보여줍니다.

실로 이 영화는 진짜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를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가령 모린이 호텔방에 들어서고, 왜 혼령 같은 존재가 호텔을 나서는 것으로 보였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한 두 가지 주요 해석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모린이 사실 호텔방에서 잉고에게 살해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해당한 모린의 혼령이 호텔을 떠나는 것으로 보였다는 것인데, 이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 장면 이후에, 모린이 라라나 어윈과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루이스의 혼령이 실제로 모린을 따라다니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루이스의 혼령이 모린을 살해범 잉고로부터 지켜내고, 호텔을 떠나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설명도 시원찮은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장면에서, 모린이 오만에서 마주한 혼령과 대화를 나누면서 한 질문 때문입니다.

모린은 이 혼령에게 루이스가 맞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 혼령은 자신이 루이스라고 답했다가, 아니라고 답하는 혼란스러운 행태를 보였습니다.

 

이런 모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사실 모린이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죽은 상태라던가

혹은 영화의 많은 부분이 살아있는 (혹은 죽은) 모린의 망상이었다느니 하는 대체가설이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장면에 관해 저만의 확고한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선 이 영화에서 진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사실 어리석기까지 한 일입니다.

예술작품들은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예술가는 인간의 본성을 묘사하기 위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설정을 전제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이 영화는 실로 많은 해석에 대해 열려있습니다.

다만, 어떤 해석도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은유와 상징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이하에서는 이 영화에 숨겨진 은유에 대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이 영화는 인간이 서로 상반되는 두 열망을 가졌을 때 보여주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모린은 두 가지의 열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화려한 삶을 사는 키라의 옷을 몰래 입어보고 싶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죽은 쌍둥이 오빠의 혼령과 의사소통을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두 가지 소망은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바로 삶에 대한 동경과 죽음에 대한 열망입니다.

모린은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이 두 가지 욕망을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작품 중에서 힐마 아프 클린트가 언급된 이유도 그와 관련이 있습니다.

작중 아프 클린트가 언급된 표면적인 이유는, 그녀가 영매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아프 클린트는 서로 상반되는 요소를 한 폭의 그림에 모두 담으려고 노력했던 화가입니다.

그녀의 그림에는 선과 악, 남성성과 여성성, 그리고 육신과 영혼 같은 요소들이 모두 담겨있습니다.

아프 클린트의 예술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호함을 유지하는 작품의 분위기에 부합할뿐더러

정체성과 열망의 혼란을 겪는 모린의 심정을 대변하는 존재입니다.

그 때문에 작품의 도입부에서 힐마 아프 클린트는 (뜬금없다고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난데없이 등장한 것입니다.

게다가 모린은 살기를 원하는 보통사람이라면 하지 않을 말과 행동을 보여줍니다.

자신을 해칠지도 모르는 스토커와 계속해서 문자 대화를 이어나가는가 하면

스토커의 호텔방 초대에도 기꺼이 응하기까지 합니다.

의사가 모린에게 오랫동안 장수할 수 있다고 해도, 정작 본인은 20대에 요절해도 아무렇지 않다는 뉘앙스의 이야기도 합니다.

여섯 달 후에 자신이 어디 있을지 모르겠다는 모린의 발언도 의미심장한 대목입니다.

한편, 이 영화는 빛과 어둠을 적절히 활용합니다.

이 영화에서 빛은 육신, 삶의 의지나 활기찬 에너지를 의미하고

어둠은 영혼, 죽음에 대한 열망, 어두운 본성을 상징합니다.

모린은 키라의 옷을 쇼핑할 때는 밝은 분위기의 스튜디오나 의상실에서 빛나는 옷들과 함께이지만

죽은 사람과 소통을 시도할 때에는 시종일관 어두컴컴한 분위기의 방에 머무릅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흥미로운 복선이 있습니다.

키라 겔먼은 모린의 고용주이면서도 작중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딱 한 번 실제 모습을 보여줍니다.

바로 모린이 잉고를 만난 때입니다.

그 장면에서 키라는 어두운 방에 파묻혀 통화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린은 키라가 있는 캄캄한 방에 완전히 들어서지는 않고, 문턱에 서있다가 되돌아서서 밝은 햇빛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 영화 전체를 통틀어 어두운 방에 있는 모습을 보여준 인물은 모린, 라라, 그리고 키라뿐입니다.

그 외의 인물들은 모두 밝은 장소에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다만 모린과 라라는 밝은 장소에서도 등장하는데, 키라는 어두운 방에 있는 모습을 한 번 보여주었을 뿐입니다.

저는 이 장면이 키라의 죽음을 암시하고, 모린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 돌아온다는 복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편, 모린이 찾아간 호텔에서 혼령이 나오는 듯한 장면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호텔방에서 모린이 살해당했다는 가설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사실 모린은 잉고에게 살해당할 뻔하다가 간신히 도망쳤다고 보는 쪽이 더 합리적입니다.

모린이 사실 반은 죽고, 반은 살아있다는 이야기도 황당하게 들리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저는 이 장면이 모린의 죽음에 대한 열망이 사라졌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모린이 잉고로부터 살기 위해 탈출하는 과정에서, 모린을 따라다니던 죽음에 대한 열망이 사라지게 되었고

영혼이 떠나는 듯한 장면은 이를 은유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렇게 모린은 죽음에 대한 열망을 완전히 저버리고,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 오만으로 떠나는 듯 보입니다.

모린의 남자친구 게리가 보여준 오만은 빛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모린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다시금 혼령을 마주하게 됩니다.

모린은 대화를 시도하지만, 이 혼령은 자신의 정체를 정확하게 밝히지 않습니다.

이 장면 역시도 이 혼령이 누구의 것인가 하는 것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다만, 이 장면 역시도 상징이 쓰였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모린은 스스로 죽음이나 어둠으로부터 멀어져서, 찬란한 삶이 있는 세상에 살게 되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열망은 모린의 삶의 일부분으로 영원히 남게 되어버렸습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떠났다고 여겼던 혼령을 모린이 다시금 마주하는 장면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제가 생각하기에 세 가지의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1. 무언가를 갈망하면, 창조하게 된다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믿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창조하게 된다. - 프란츠 카프카
(By believing passionately in something that still does not exist, we create it. - Franz Kafka)

저는 카프카가 한 위의 이야기가 이 영화의 스토리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모린은 영혼에 대한 열정적인 믿음, 죽은 오빠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으로 가득 찬 존재입니다.

우리가 믿고 바라는 모든 것이 전부 실현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이 정말 간절히 믿는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2. 인간은 모순된 열망을 품는 존재이다

인간은 여러 가지 열망을 품지만, 항상 일관된 존재는 아닙니다.

우리는 삶을 원하면서 죽음을 원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혼자가 되고 싶기도 하고, 때로는 친구 옆에 있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빛나는 무언가를 갈망하다가도, 한없이 어두운 무언가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어리석은 열망을 품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모순된 두 소망을 갖고 씨름하기도 합니다.

 

3. 삶에 빠지면, 죽음을 동경하게 된다.

저는 인간이 여러 의미에서 묘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한 가지 이유는, 인간은 항상 자신에게 없는 무언가를 갈망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좌절이나 슬픔 때문에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도 정작 죽음의 문턱에 서게 되면, 살고 싶다는 충동이 드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별개로, 죽음이 닥쳐오면 살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런데 완전히 정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찬란한 삶의 한가운데에서 부족함 없이 사는 사람들이 죽음을 동경하는 경우가 그것입니다.

삶의 많은 것에 지나치게 빠져든다고 살려는 의지가 항상 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삶에 깊이 빠져들수록, 죽음에 대한 열망도 함께 따라옵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없는 무언가를 갈망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무수히 많은 상징들과 디테일이 녹아있는 작품입니다.

실제로 이 영화는 굉장히 난해하고 모호하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관람하고, 깊이 생각하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굳이 생각하는 것이 싫다고 해도, 이 영화는 미적으로도 뛰어난 작품입니다.

요컨대, 영상미와 철학이 모두 담긴 걸작이기 때문에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꼭 한 번 보시길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한편, 저는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정말 적합한 배우였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가진 배우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배우는 혼란스러워하는 듯한 연기에 일가견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시종일관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보여주는데,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이 분위기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존재였습니다.

 

이상으로 영화 퍼스널 쇼퍼의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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