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요새 뉴스를 읽으면서 생각에 잠기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최근 제가 주의 깊게 읽은 뉴스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레고랜드 사태, 그리고 청와대의 언론탄압 의혹, 마지막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사건들은 서로 무관해 보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레고랜드 사태는 지방정부가 상환을 보증한 공공채권에 대해 상환 약속을 지키지 않아 일어났습니다.
최근 청와대의 언론탄압 의혹은, 대통령의 말실수를 청와대가 적당한 거짓말로 무마하려다가 일이 커진 형국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이 나토 확장을 억제하겠다는 공약을 해놓고 보란 듯이 약속을 어겨서 일어났습니다.
요컨대, 이 세 가지 사건은 서투른 거짓말, 혹은 일방적인 약속 파기로 인한 신뢰파괴 때문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한편, 이 사건들에 대해 고민하면서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기는 한가 하는 것입니다.
가령, 취업준비생들은 면접에서 회사에 지원한 이유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절대 곧이곧대로 답하지 않습니다.
설령 회사에 지원한 진짜 이유가 '중간에 해고 안 당하고 오래 일할 수 있어서'라던지
'회사 간판이 마음에 들고 복리후생도 괜찮아서'라고 해도 절대 정직하게 답하지 않습니다.
면접생들은 항상 '회사의 비전과 나의 성장 가능성' 같은 말을 적당히 주워섬기며 그럴듯한 말을 지어냅니다.
실제로 면접생의 거짓말은 선의의 거짓말이라기보다는 본인의 합격을 위한 이기적인 거짓말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이들 면접생이 거짓부렁으로 면접시험에 합격해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런 류의 거짓말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거짓말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사회 구성원들 대다수가 면접생이 면접시험에서 솔직한 답변만을 내놓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주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용서받지 못하는 거짓말도 있습니다.
이의 대표적인 사례로 이력 위조를 들 수 있습니다.
가령, 회사에 지원한 사람이 이력서에 가짜 학력을 위조해서 기재했다고 해보겠습니다.
이건 '면접생의 면접용 거짓말'과는 경우가 다릅니다.
학력은 개인의 이력에서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게다가 학력위조는 면접용 거짓말과는 달리 누구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요컨대, '고의적이고 체계적인 거짓말을 통해 자기 PR을 하는 행위'는 사회적으로 용인받기 힘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공인들의 대학원 논문 표절이 설령 '그들만의 세계'에서는 흔한 일이어도
모든 사람들이 이를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위와 같은 거짓말로 돈을 버는 사람들을 세상은 사기꾼이라고 부릅니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거짓말에 기반한 수익활동을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거짓말과는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없습니다.
한편, 정치인들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하는 거짓말은 이제 정치인 특유의 수사(rhetoric)로 자리 잡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 아무리 정치인이라도 모든 거짓말에 대한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약속을 어기는 것도 신뢰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거짓말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약속을 어기는 것은, 자신의 과거 약속이 거짓이었음을 시인하는 셈입니다.
이 세상에는 약속을 어기거나, 거짓말이 들통난 다음에도 배 째라고 큰소리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을 불량배라고 부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길거리 싸움실력이 출중한 강자들이 불량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못나고 내세울 것 없는 약자들도 불량배가 됩니다.
사람이 불량배가 되는 이유는 양심과 죄책감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지, 특별한 장점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한편, 저는 거짓말에 대한 처벌에 공명정대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회적 약자라도 중대한 거짓말을 한 것이 탄로 났다면, 때로는 잔인하게 처벌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회적 약자라고 거짓말을 마음대로 해도 괜찮다는 권리는 없기 때문입니다.
올 한 해, 세계에서 일어난 가장 끔찍한 사건을 꼽자면 우크라이나 전쟁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전쟁을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기 위해 시작한 전쟁으로 인식했습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미국이 나토 확장에 관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올해 푸틴 대통령은 잔인한 결정을 내렸고,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과연 푸틴 대통령이 광기나 야성적 충동으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는 의문입니다.
만약 미국이 중대한 약속을 파기해놓고서 속된 말로 '배 째라(sue me)'고 한 것이 사실이라면
극단적인 결정을 내린 푸틴을 탓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고통을 함부로 재단하거나, 전쟁의 원인을 한 마디로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우크라이나의 주권은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미국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우크라이나가 지는 형국도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미국같이 세계질서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나라가, 중요한 약속을 보란 듯이 어겨놓고
(미국이) 종국에는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기대했다는 것은 저로서는 다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미 한국의 이웃나라인 북한이 수십 년간 비핵화에 관한 거짓말을 하면서 도발을 이어나간 전례가 있습니다.
저는 모든 중대한 거짓말과 도발에는 대가가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는 쪽입니다.
이 세상에는 용서받지 못하는 거짓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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