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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예술의 존재이유 - (14)

저는 대학시절에 제임스 조이스라는 작가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이 작가는 의식의 흐름이라는 기법으로 복잡한 작품을 쓴 것으로 유명합니다.

실제로 저는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들이 너무나도 심오하고 난해한 탓에 도무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든 생각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끼적거려놓고 존경을 받으려고 하다니, 뻔뻔한 작가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관객이 이해하기 힘든 예술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많은 관객들에게 감동과 행복을 안겨주어야 가치 있는 예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임스 조이스뿐만이 아닙니다. 저는 현대미술도 쓸모없는 예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현대미술에서는, 아무리 많은 공부를 해서 배경지식을 쌓아도

사회적 틀이나 관객의 상식을 파괴하는 작품이 끊임없이 등장합니다.

아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돈과 명성을 구한다는 점에서, 현대미술은 사기와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어쨌건 이런 난해한 예술들 때문에 저는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편견이란, 예술은 심오함을 드러내기 위한 허영심의 발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고민을 하나씩 더해갈수록, 이 생각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예술은 개인의 능력이나 탁월함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사실은 정반대로, 예술은 무언가를 숨기기 위한 도구입니다.

예술은 이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을 작가가 자신만의 언어로 감추어 놓은 것입니다.

우리가 언뜻 예술을 연상하면, 무언가 밝고 찬란한 존재를 연상합니다.

하지만 예술작품에는 빛뿐만 아니라 작가의 어두움도 담겨 있습니다.

예술작품의 어두움 속에는 감상자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담겨있습니다.

그렇게 감상자는 작가가 만든 어둠의 궁전을 거닐다가, 자신만을 비추는 한줄기 빛을 발견하고 감동합니다.

바로 이 한줄기 빛 때문에 작가와 감상자가 연결될 수 있다면, 저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실로 작가의 많은 생각들은 작품 속에 철저히 숨겨집니다.

따라서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난해한 예술이라도, 제 나름의 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저는 어려운 예술에 대한 편견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예술은 때로는 난해해질 수도 있지만, 어쨌든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술은 사람들에게 강력한 믿음을 심어주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예술은 정치의 수단, 비즈니스의 대상, 심지어는 사기행각의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참으로 슬픈 일이지만, 예술이 세속세계와 완전히 분리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예술이 남용되는 세상에서는, 예술 본래의 역할과 의미에 대한 고민이 더 중요해집니다.

예술이 감성이나 철학, 혹은 사회문제를 담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술이 거짓말이나 세속적 가치를 뒷받침하는 도구가 되는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는 이번 해, 세속적 가치가 예술가 정신을 파괴하는 일을 너무나도 많이 목격했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하고, 화가 날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저도 현실을 겸허히 수용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순수한 열정이나 마음을 남들에게까지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누구나 훌륭한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은 남들에게 이야기하지 않는, 아름다운 무언가를 가슴속에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아름다운 무언가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삶의 이정표가 되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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