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유명한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아주 먼 옛날, 판도라라는 이름의 여자가 살았습니다.
판도라는 에피메테우스라는 남자와 결혼하면서, 신에게 결혼선물로 상자 하나를 받았습니다.
이 선물과 함께, 이들 부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상자를 열어보면 안 된다.'라는 신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에피메테우스는 집 한구석에 상자를 숨겨놓고 고이 간직했습니다.
어느 날, 판도라는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하다며 남편에게 이 상자를 열어보자고 했습니다.
에피메테우스는 거절했지만, 결국 남편이 집을 비운 틈을 타서 판도라는 상자를 열고 말았습니다.
판도라가 상자를 열자, 그 안에 있던 증오, 질투, 분노와 같은 온갖 재앙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 재앙들은 세상의 모든 인간에게로 퍼져나가, 많은 사람들이 절망과 고통을 겪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나쁜 것들이 빠져나온 상자 안에는 오직 희망만이 남았습니다.
인간은 그 후로 어떤 나쁜 일을 당해서 절망을 겪더라도, 희망만은 잃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읽고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교훈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1. 인간이 운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운명이 인간을 선택한다는 점
많은 사람들은 인간이 어느 정도의 자유의지를 갖고 개인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한 인간의 많은 중대한 결정은, 타고난 천성과 재능의 영향을 받습니다.
판도라는 호기심이라는 천성을 이겨내지 못하고 상자를 열고 말았습니다.
물론 삶에서는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만, 천성은 항상 의지를 이겨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이 자유로이 운명을 선택한다는 것은 착각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천성에 얽매인 결정을 통해 삶을 살아나간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운명이 인간을 선택한다고 하는 편이 더 진실에 가깝습니다.
2. 금기 없는 열망은 없다는 점
판도라가 상자를 열고 싶게 된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는, 상자를 열지 말라는 신의 계시였습니다.
인간이 무언가를 갈망하게 되는 가장 흔한 이유는 그것이 금기시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금기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호기심은 관심이 되고, 관심은 욕망이 되고, 욕망은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세상에 금기가 없다면, 사람들은 무언가를 열망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비슷한 이유로, 사람들은 불가능한 무언가를 소망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죽은 사람을 다시 만나는 것이 불가능하고 터무니없는 소망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고인이 된 가족이나 친구들을 그리워합니다.
어리석은 소망을 품고, 불가능한 무언가를 열망하는 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본성입니다.
3. 희망은 절망으로부터 태어난다는 점
저는 이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에서 특별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세상의 모든 절망과 희망이 한 상자 안에 같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언뜻 생각하기로는, 절망은 불행이나 재난과 함께 있어야만 할 것 같습니다.
희망이 절망과 함께 있다는 것은 실로 이상한 일입니다.
하지만, 희망은 절망 한가운데 놓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무언가입니다.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습니다.
세상에는 서로 반대되는 것들이 이해할 수 없는 관련성을 맺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상처를 받고 증오를 품기도 합니다.
때로는, 행복한 추억을 회상하는 것은 슬픈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희망과 절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희망은 절망으로부터 태어납니다.
제게 희망은 굉장히 특별한 감정입니다.
미래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은, 인간이 삶을 지탱해 나가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어쨌건 인간은 행복만 느끼면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체험할 수 있는 행복에는 한계가 있지만, 절망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는 것이 인간의 사명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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