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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제 인생의 후회 - (17)

저는 지난 12월, 제주도에 있는 한라산에 다녀왔습니다.

 

저는 호스텔에서 만난 독일인 친구와 함께 정상을 가기로 약속하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섰습니다.

막상 처음 등산을 시작할 때는, 정상을 정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앞서 가는 친구의 발뒤꿈치만 보면서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숨이 차고 다리가 저려서 걸을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산 정상까지 멀지 않은 곳이었지만, 힘든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독일인 친구를 먼저 보내고, 산중턱에 주저앉아서 쉬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저는 힘든 것을 전부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제 눈앞에 펼쳐진 한라산의 경치가 너무나도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상에 올라야 한다는 생각에 서둘러 등산을 하느라 경치를 구경하는 것도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렇게 너무나도 지쳐서 잠시 멈춰 섰을 때, 저는 비로소 한라산이 얼마나 멋진 산인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여행이라고 하면 어딘가로 떠나는 것을 연상합니다.

저도 무심결에, 여행은 어딘가로 바쁘게 이동하기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라산을 등반하면서 제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여행은 어딘가에 잠시 멈추어 서는 것입니다.

여행은 우리가 무심결에 지나칠 수도 있는 멋진 광경을 찬찬히 발견해 내는 과정입니다.

저는 산 정상에 거의 다 도착해서야 이런 사실을 깨닫고, 후회심이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너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경치를 구경하며 올랐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자 아쉬웠기 때문입니다.

 

무언가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저는 제 자신의 우월함을 입증하기 위해 산 정상을 정복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에 빠져들었던 것입니다.

저의 20대를 돌이켜보면, 저는 멋지고 똑똑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쓸데없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낭비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우월함을 보여주는 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저로서는 10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저는 20대 초반을 분노와 편견들에 사로잡힌 채로 보냈습니다.

그래서 저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이유 없이 미워하고 멸시하며 지냈습니다.

저는 저만의 인생관과 사고방식에 너무나도 집착했던 나머지

제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교류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훌륭한 사람들과 교류할 소중한 기회들을 많이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분노와 편견에 사로잡혀있던 저는, 그다지 행복한 20대를 보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사실 누군가에 대한 화를 품는 것은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실제로 분노의 표적이 되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이 있다면, 분노하는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실로 20대는 멋진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교류하기에도 짧은 시간인데, 저는 분노와 편견으로 많은 세월을 허비했습니다.

저는 고통스러운 화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 분노를 어딘가에 몰래 묻어버리고는 제가 다시는 찾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만약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증오심이나 집착하는 마음으로 고통받고 있다면, 저는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끝을 알 수 없는 분노와 집착에 빠져든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정도 도가 지나치면 여러분 스스로를 좀먹게 됩니다.

인생은 무언가에 화를 내고,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기에는 너무나 멋진 것들로 가득 차있습니다.

하찮은 악감정에 집착하다 보면, 인생의 소중한 것들을 너무나도 많이 잃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세상사에 초연한 현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인생을 온전히 즐기려면 나쁜 감정은 어련히 털어버리는 자세도 필요한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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