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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5억 년 버튼 이야기 - (2)

최근 재미있는 단편만화를 하나 접하게 되었습니다.
(출처 : https://www.inven.co.kr/board/webzine/2097/149552)

이번 글에서는 그 내용을 다뤄보려고 합니다.

이 작품은 스가하라 소타라고 하는 일본 만화가가

2000년대 초반에 연재한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유튜브에 영어로 된 영상 버전도 올라와 있습니다.(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RbCerMBxUFM) 

 

이 만화에는 아래의 주인공 세 명이 등장합니다.

↑스네로(Sunero)

↑토니오(Tonio)

↑쟈이타(Jaita)

 

특이한 점은 이 세 주인공은 모두 유치원생으로 같은 유치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치원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스네로와 쟈이타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이 세 주인공은 모두 동갑임에도 불구하고 토니오가 스네로와 쟈이타의 심부름을 도맡아 하고 있는 처지입니다.

이제 만화 내용을 요약해보겠습니다.

 

어느 날, 스네로는 어머니의 심부름을 하려고 외출을 하게 됩니다.

스네로의 집안 형편은 썩 좋지 못합니다.

그래서 스네로의 어머니는 스네로에게 "돈은 나중에 줄 테니 고기를 사다 달라"라고 합니다.

스네로는 집을 나서고 나서야 돈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때, 스네로는 친구인 토니오와 쟈이타를 마주치게 됩니다.

스네로는 토니오에게 "편하면서 시급도 높은 아르바이트가 없는지"를 물었고

토니오는 스네로에게 한 가지 일거리를 제안합니다.

그러면서 이 일은 "순식간에 1000만원(미화로 10000달러 상당)을 벌 수 있는 아르바이트라고 합니다.

이 아르바이트는 어떤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1000만원을 받는 일입니다.

토니오에게는 버튼 모양의 기계가 있습니다.

이 기계의 버튼을 누르면 순간적으로 미약한 전류가 흐르고

버튼을 누른 사람의 의식이 다른 차원의 공간 어딘가로 워프하게 됩니다.

정확히 말하면, 버튼을 누르는 순간 아무것도 없는 공간으로 몸이 옮겨지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워프한 공간에서는 죽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습니다.

의식만이 워프하는 것이므로,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르지도 않습니다.

이 공간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므로 달리 할 일도 없습니다.

버튼을 누른 사람은 이 공간에서 총 5억 년을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이 다른 차원의 공간에서 5억 년의 시간이 흐른 다음에는

이 사람은 원래 살던 세상으로 돌아옵니다.

물론 다른 차원의 공간에서 5억 년을 겪은 후지만 현실 세계에서의 시간은 전혀 흐르지 않은 채로 돌아옵니다.

게다가 5억 년의 기억은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전부 삭제됩니다.

다시 말해, 다른 세계에서 5억 년을 보내고 현실로 돌아올 때에는 버튼을 누른 시점의 기억으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따라서 버튼을 누른 사람은, 버튼을 누르더라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느끼게 되며

1000만원의 보수까지 순식간에 받게 됩니다.

토니오는 친구인 스네로와 쟈이타에게 이 일자리를 제안합니다.

그러면서 토니오는 몇 번이고 "진짜 이 일을 하고 싶은지"를 재차 묻습니다.

이 버튼을 누른 사람은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공간에서 5억 년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하지만 종국에는 기억이 모두 삭제되므로 공짜로 큰돈을 벌 기회인 것도 같습니다.

게다가 스네로와 쟈이타는 유치원생이었기에, 5억 년의 세월을 체감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쟈이타는 선뜻 버튼을 누르겠다고 나섰고, 스네로는 옆에서 이런 쟈이타를 보며 초조해합니다.

결국 쟈이타는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런데 옆에서 볼 때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쟈이타는 기계가 고장 난 것인지 의아해합니다.

그런데 그 순간, 토니오는 쟈이타에게 1000만원의 거금을 건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만 같지만, 사실 5억 년의 세월을 체험하고 돌아온 것이다"라는 말과 함께 말입니다.

결국 쟈이타는 한 번 더 무심결에 버튼을 누르게 됩니다.

그리고 또다시 1000만원을 받아서 도합 2000만원의 거금을, 그야말로 순식간에 얻습니다.

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스네로는 정말 손쉽게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스네로는 "우선 1000만원"부터 받기 위해 버튼을 누르게 됩니다.

↑그리고 버튼을 누른 그 찰나의 순간, 스네로의 정신은 어딘가로 워프하게 됩니다.

스네로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타일 모양의 바닥이 무한히 펼쳐진,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서있었습니다.

↑ 스네로는 이 이상한 공간에서 출구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습니다.

총 3일을 뛰어다녔지만 출구를 찾지 못한 스네로는 결국 주저앉게 됩니다.

↑ 결국 스네로는 이 텅 빈 공간에서 엄청난 세월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천천히 실감하게 됩니다.

잠도 안 오고, 배도 고프지 않지만 알 수 없는 공포를 느끼던 스네로는 첫 일주일을 가족과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보냈습니다.

↑ 스네로는 첫 40년을 혼자서 이런저런 놀이를 하며 보냈습니다.

스네로는 '왼손과 오른손으로 하는 가위바위보', '타일의 선 안 밟고 걸어 다니기 놀이'와 같이 혼자서 할 수 있는 놀이를 어떻게든 개발해냈습니다.

스네로는 이빨을 뽑아 던진 다음 이를 찾아다니는 놀이, 혼자서 하는 끝말잇기 등 여러 놀이를 질리지도 않고 해왔습니다.

스네로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스네로는 때로는 망상 속에 빠지기도 하고, 무의미한 놀이만 반복하면서 40년을 보냈습니다.

↑ 결국 스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스네로가 이미 이 세계에서 살아간 세월은 현실 세계에서 살아온 세월의 총기간을 넘어선 지 오래입니다.

스네로는 버튼을 누른 것을 후회하면서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세월을 보냅니다.

스네로는 잠을 자거나, 의식을 잃거나, 자살할 수도 없는 공간에서

매 시간을 초단위로 인식하면서 몇 천년의 세월을 보냅니다.

↑스네로가 이 공간에 온지 500만여년이 흐른 시점에 스네로는 인식론에 관한 의문을 품게 됩니다.

사실 스네로가 현실 세계에서 산 세월은 10년이 채 안됩니다.

스네로가 새로운 세계에서 살아간 500만년에 비하면 정말 찰나의 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엄청난 세월이 흐른 다음이기 때문에 스네로는 현실세계에서의 기억도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네로는 자기가 원래 살던 세상이 가짜이고 망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와 동시에 스네로는 진짜 우주의 진리를 스스로 깨우쳐야겠다고 마음먹게 됩니다.

↑스네로는 혼자서 생각하고 그 생각을 검증할 시간이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았습니다.

스네로는 뽑은 이빨을 펜 대용으로 사용하면서 자신만의 과학과 철학을 완성시켜 나가기 시작합니다.

스네로는 그렇게 2000만년간 텅 빈 공간에서 사유한 끝에, 인류가 가지고 있던 모든 지식과 기술을 초월하게 됩니다.

↑그렇게 텅 빈 공간에서 1억년간 고민하고 생각을 가다듬던 스네로는

결국 우주와 세상 만물을 완전히 이해하게 됩니다.

스네로는 남은 몇 억년 간의 시간을 시간과 공간의 본질에 대해 사유하고 이들과 조화하면서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대망의 5억 년을 맞는 순간, 스네로는 버튼을 누른 바로 그 시점의 현실세계로 돌아가게 됩니다.

 

↑물론 토니오가 말한 그대로,  돌아오는 순간에는 5억 년 간 사유하고 고뇌하던 기억들은 모두 삭제되어 버립니다.

결국 유치원생으로서 경솔하게 버튼을 누른 시점의 기억으로 되돌아와버린 스네로.

↑기억이 삭제되어버린 스네로는 안타깝게도

"버튼을 눌렀더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1000만원의 거금을 손에 넣었다"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그 와중에 쟈이타는 이미 버튼을 두 번이나 눌러서 10억 년에 달하는 영겁의 세월을 체험했음에도

모든 기억이 사라졌기 때문에 또다시 버튼을 누르겠다고 나섭니다.

↑급기야 스네로는 토니오에게 몇 번이고 버튼을 눌러도 상관없는지 물어봅니다.

기억이 삭제된 입장에서는 이 일이 굉장히 쉬운 돈벌이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네로는 버튼을 16연타하는 묘기를 보여주겠다며

16번씩이나 5억 년 세월을 체험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만화는 끝이 납니다.

 

저는 이 만화를 보면서 여러 가지 느낀 점이 있었습니다.

 

첫째, 현실의 상대성입니다.

저라도 5억 년 간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면, 지금 사는 현실세계는 그저 한낱 꿈으로 치부하게 될 것만 같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만사를 판단합니다.

세상사에 대해 옳은 판단을 하는 데에는 다양하고 폭넓은 경험이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둘째, 인생의 덧없음입니다.

만화에서 주어지는 영겁의 세월에 견준다면, 인생은 너무나도 짧다고 느꼈습니다.

아무리 기쁘고 슬픈 일이 있더라도 무한히 기나긴 세월 앞에서는 큰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셋째, 고통에 대한 새로운 관점입니다.

우리는 고통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인간이 고통받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고통으로 그 자신이 돌이킬 수 없이 훼손될 것이 두려워서입니다.

그렇다면, 고통의 기억이 완전히 삭제된다고 보장되는 한편, 어떤 후유증도 남지 않는다면 그 고통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떠오릅니다.

이 문제에 정답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좋은 일을 기대할 수 있다면 잠시의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때로는, 결과만큼 과정도 중요합니다. 아무리 어떤 고통이 흔적을 남기지 않더라도 고통은 고통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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